잠의 본질 그리고 꿈과 건강 (1)

잠의 본질

잠을 자거나 반수상태에 이르러야만 꿈을 꿀 수 있다. 따라서 꿈을 이해하려면 먼저 '잠이란 무엇인가' 라는 명제부터 풀어야 한다. 잠을 자는 이유에 대하여는 수많은 학자들이 여러 가지 가설들을 제시하고 있으나 그 중 어느 것 하나도 명쾌한 답이 되지는 못하다.

다만 지구상에 생명체가 탄생하고 진화하는 과정에 낮과 밤이 바뀌는 자전 주기에 맞추어 일정한 생체리듬이 생겨났다는 설이 가장 큰 설득력을 얻고 있다. 더불어 잠은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며, 만약 잠을 자지 않을 경 우 몸과 마음이 극심한 혼란을 겪게 된다는 사실만은 무수한 임상실험을 통해서 명확하게 입증되어 있다.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 학파의 정신분석학자들은 잠의 목적을 외계와의 절연으로 얻어지는 생리학적 휴식으로 보았는데, 그것은 어둡고 자극이 없는 태내(胎內)생활로 되돌아가려는 본능적 욕구가 작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성인(成人)에게 적당한 수면 량은 일일 7~8시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제아무리 건강한 성인이라도 100시간 정도 잠을 자지 못하면 균형을 잃게 됨으로써 정신착란을 일으키게 된다고 한다. 결국 잠은 육체의 피로를 풀어줌으로써 새로운 활력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정신활동에 필수적인 생체리듬을 유지시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잠은 생산적인 면도 가지고 있다. 밝혀진 바에 의하면 우리의 몸은 수면 중 낮에 섭취한 음식물을 소화 • 흡수하고 생장호르몬을 왕성하게 분비한다고 한다. 어린이의 성장은 전적으로 밤에 이루어지며, 성인의 수염이 밤중에 많이 자라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최근에는 수면 중 면역증강물질이 분비되어 우리 몸의 면역기능을 강화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하였다.

꿈과 건강

잠을 자는 목적이 피로와 긴장의 해소라는 관점에서 꿈이 이를 방해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런 사람들은 꿈을 꾸지 않을 경우 더 건강해 질 것이 아니냐는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즉 꿈이 안면을 방해함으로써 건강을 해친다는 생각인 것이다.

그러나 최근 관련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꿈은 잠의 방해자가 아니라 우리 정신 건강에 절대 필요한 요소이며, 꿈을 꾸지 못할 경우 오히려 극심한 불안상태가 되어 흥분하기 쉽고 집중력을 상실하게 된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오랜 기간 꿈을 박탈당하면 일종의 신경 쇠약증이 생긴다는 것이다. 실제 동물실험으로 꿈을 꾸지 못하게 하고 잠만 자게 하였더니 정신이상이 되거나 심지어는 죽어버리는 결과까지 도출되었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꿈은 외부로부터의 긴급사태에 대한 준비상태를 만들어내고 수면 중에 본능적인 기능을 발휘하여 그 욕구를 발산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등장하게 되었다.

한편 꿈은 낮에 축적된 긴장을 해소시키는 안전판 구실도 한다고 한다. 이것은 로베르또가 주장한 것인데, 그는 꿈에 대한 심적 반응현상을 신체적 분비과정으로 보아 이를 '질식된 관념의 분비' 라는 개념으로 정의한 바 있다.

그는 '꿈을 꾸는 능력을 빼앗긴 사람은 당장에 미친 사람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미완성인 동시에 숙고되지 못한 많은사상과 천박한 인상들이 그의 뇌에 축적되어 그 중압으로 말미암아 완성된 전체로서 기억에 편입되어야 할 사상이 질식되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소화되지 않은 상태로 마음속에 남은 사상의 성분 중에서 분비되지 않은 것은 공상에 의거하는 사상 영역에 의하여 완성된 전체로 기록되며, 이리하여 해롭지 않은 공상화로서 기억 속에 편입된다' 고 말하고 있다.

나는 로베르또의 견해를 재확인하는 과정에서 질식된 관념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 하는 약간의 의문을 갖게 되었다.그러나 꿈이 질식된 관념을 분비시킴으로써 정신적 긴장이 완화되고 뇌의 피로가 회복되며, 내일의 정신생활에 이바지할 활력과 희망을 가져다준다는 주장은 틀림없이 정론(正論)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꿈을 꾸는 것이 괴롭다고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잠만 들면 꿈을 꾸고 그꿈을 너무 많이 기억하게 됨으로써 이튿날 깨어나면 뒷머리가 아프고 전신에 힘이 빠져 의욕마저 상실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물론 아름다운 사연이 전개되는 꿈이라면 즐거움이 있겠지만, 공포•불안•초조 등의 심적 갈등을 유발하는 꿈이 지속된다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만약 수면 중 뇌의 활동이 정지되지 않은 상태에서 낮 동안 해결되지 않은 관심사를 해소하기 위하여 꿈이 형성되는 것이라면 꿈을 꾸지 못하게 하는 것은(물론 꿈을 꾸지 못하게 할수는 없지만) 잠을 자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또한 설령 그러한 시도를 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해도 기껏해야 서파수면기(RAM기)에나 잠을 자지 못하게 하여 그동안 꿈을 꾸지 않았다고 단정하는 도리밖에 없는데, 결국 이런 실험은 단몽실험이 아니라 단수면 실험에 불과할 것이다. 실제로 RAM기에서 단몽실험을 해 본 사람들이 있었으나 좋은 결과는 가져오지는 못했다.

꿈꾸는 동안의 신체적 변화

꿈을 꾸는 동안 여러 가지 신체적 변화가 일어남을 알 수 있는데, 관련학자들에 의하면 뇌파의 변화가 생기고 안구운동이 일어나며 근전도에 변화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근육이 긴장 • 이완되고, 맥박 • 혈압 • 호흡 등이 달라지며, 음경이 발기되는 등의 변화가 있음도 발견하였다.

이런 실험 결과 인간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판정하게 되었는데, 꿈의 연구를 관념론적 경향으로부터 자연과학적 경향으로 이끌어 들였다는 점을 들어 그 과학적 공적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꿈을 꾸는 동안에만 이런 변화가 더 심각하게 나타나는 것인지, 아니면 꿈과는 관계없이 잠을 자는 심도에 따라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인지 하는 것에 대하여는 명쾌한 판단이 내려지지 않고 있으며, 또 이러한 변화가 선행되어 꿈을 만드는 것인지 아니면 꿈속의 사고나 행위가 이러한 변화를 가져오는 것인지 하는 의문에 대한 해답도 유보된 상태다.

꿈의 내용이 강렬하고 심각할수록 꿈을 꾸는 동안 신체부위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는데 꿈속에서 운동경기를 관전하고 있다면 안구 운동이 두드러질 것이요, 남을 때리는 꿈을 꾸고 있다면 실제로 손이 움직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성교를 하는 꿈에서 절정을 체험하였다면 몽정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꿈속의 정동이 극에 달하면 마침내 의식의 각성으로까지 영향을 미침으로써 잠을 깨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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